오래전 집의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커다란 방이었을 때에는 부엌과 침실, 거실과 구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거실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부엌과 침실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당시에는 거실에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었으며 따듯한 불 주변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잠을 청했다. 집이 거실이었고 모든 일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때로 손님이 찾아오면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역시 거실이었다. 손님 역시 거실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그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말 그대로 다용도 거실이었던 셈이다.



 

17세기 즈음, 집을 여러 개의 특화된 목적을 가진 공간으로 구획하고 나누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다용도 거실에서 다양한
방(Room)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침실과 주방, 응접실 등 다양한 방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와중에 우리가 오늘 흔히
거실(Living Room)이라고 부르는 공간도 나타났다. 보통 응접실이라 불리었던 당시의 거실은 지금의 거실과는 다소 다른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적어도 겉모양은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면서 이전의 다용도 거실에서 여러 가지 공간과 기능들이 분리되었다. 침실과 부엌이 각자의 기능에 맞게
분리되어 나갔고 이어서 다양한 이름과 형태를 가진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응접실은 현대의 거실과 비슷하게 탁자와
의자가 있는, 손님과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보다 손님에게
보여줘야 하는 공간을 꾸미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응접실은 다른 공간보다 특별히 더 장식되었고 신경 써 꾸며졌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응접실은 일종의 전시장이었다. 집안과 가장의 내력과 실력, 전통과 성취를 집약해 장식하고 치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가보를 전시하거나, 빼어난 예술 작품을 걸어놓기도 했으며, 태피스트리와 같은 장식물로 공들여 치장했다. 그런
까닭으로 응접실은 점차 집안의 바깥주인을 상징하는, 무겁고 남성적인 공간으로 발전했다. 침실이 집안의 안주인을 상징하는 여성적인
공간으로 내밀하게 발전한 반면, 응접실은 그와는 대조적인 개방적이고 화려한 공간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주택에는 응접실이나 담화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휴식을 즐길 공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시작된 응접실의 의미는 바로 그곳에서 드러난다. 온종일 노동에 전념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장식과 사교를 위한 공간이
바로 당시의 거실 즉, 응접실의 의미였다. 응접실의 존재 자체가 집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공간이었으며, 기능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응접실은 곧 집안과 가장의 권위와 권력 그 자체로 여겨졌다.



 

이후 도시가 발전하고 저택이 아닌 주택이나 아파트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늘면서 응접실은 규모와 수가 크게 줄었다. 대부분의 도시
가정에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응접실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비교적 출입구에 가까워 손님을 맞이하기 편한 방 하나를 꾸미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값비싼 가구와 화려한 장식품들이 가득한 응접실 즉, 보다 현대적인 의미의 거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그 규모와
수가 줄었지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당연히 크고 화려하게 꾸며졌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17세기에 시작된 화려한 응접실 문화와 양식이 순식간에 밀려났다.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의 현대적 주택은 실용적이고 단순한 주거용 기계에 가깝게 여겨졌다. 장식과 치장은 최소로 줄었고 기능성이
강조되었다. 화려한 실내 장식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놀랍게도 투명한 유리였다. 모더니즘은 풍부한 자연광을 거실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아파트나 주택의 거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커다란 유리와 풍부한 자연광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상징인 것이다.



 

모더니즘의 등장만큼이나 거실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TV의 등장이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꾸며지던 공간에서 TV를 보기 위한 공간으로
급격하게 그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던 공간에서 지금은 TV를 보기 위한 곳, TV를 보면서 쉬는 곳,
TV를 보면서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실제로 요즘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거실에 놓이는 의자 즉 소파는 벽을 등지고
빈 벽을 바라보게 배치되곤 한다. TV의 등장이 바꿔놓은 생활 양식이다. 서로를 향해 놓였던 의자들은 이제 동시에 같은 곳을 본다.



 

예나 지금이나 거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의자다. 의자는 휴식을 취할 때나 편지를 쓸 때 반드시 필요했고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실질적인 다양한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요즘엔 거의 편하게 TV를 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취급받지만 말이다.
중세 유럽의 주택에서는 오직 집주인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푹신푹신한 소파가 아니었음에도 아무나 함부로 의자에
앉을 수 없었던 것은, 의자에서 하는 많은 행위들, 책을 읽는 일과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일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푹신한 소파는 원래 아라비아에서 건너간 귀족적이고 호사스러운 사치품이었다. 17세기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와는 다르게 소파는 푹신푹신했고 다양한 자세로 편히 쉴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응접실에 소파를 두는 것은 좋은 자랑거리였고 재력을
가진 이들은 앞다퉈 응접실에 소파를 놓았다. 더이상 거실이 전시장이 아니고 소파가 사치품이 아닌 이제는 대부분의 집에 소파가 놓여있으며
누구나 쉽게 소파에 앉을 수 있다. 심지어 남의 집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거실의 겉모양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의미가 달라진 덕분이다.



 

거실과 주방, 식당의 구분이 모호한 현대적 오픈 플랜식 주택은 193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해 1950년대에 점차 일반 가정에 널리 적용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나뉘기 시작한 다양한 방들이 다시 합쳐지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과 다양한 기술의 발전이 필요했다. 모닥불이나 화로 대신
보일러와 라디에이터가 들어섰고 연기와 냄새를 만들어내던 주방에는 전자렌지와 환풍기가 생겼다. 딱딱한 나무의자 대신 안락한 소파가
들어섰으며, 어릿광대나 음유시인 대신 TV가 들어섰다. 거실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지금의 양식과 문화도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사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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